샤워하고 나서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쌓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저도 2년 전쯤 처음 그 상황을 겪었을 때 환절기 탓이라고 애써 외면했는데, 계절이 바뀌어도 빠지는 양은 줄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진 머리카락 수를 세는 게 루틴이 됐고, 정수리 사진을 찍어가며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탈모는 단순히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호르몬 변화와 유전적 요인, 생활습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유전과 호르몬: 탈모가 진행되는 근본 메커니즘
탈모를 이해하려면 먼저 머리카락이 자라는 사이클을 알아야 합니다. 정상적인 모발은 5~6년 동안 자라는 성장기를 거쳐 2~3주간 성장을 멈추는 퇴행기에 들어가고, 이후 휴지기를 거쳐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하루에 100개 정도까지는 정상 범위로 봅니다. 문제는 이 성장기가 점점 짧아지는 경우입니다. 남성형 탈모 환자의 경우 일부 모발에서 성장기가 1~2개월로 짧아지면서 머리카락이 1cm 정도만 자라고 빠지는 패턴을 반복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DHT라는 호르몬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두피에 존재하는 5알파 환원효소와 만나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즉 DHT로 전환됩니다. 이 DHT가 모낭의 뿌리인 모유두에 작용하면서 모발의 성장을 억제하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머리카락은 점점 가늘어지고 힘이 없어지다가 결국 빠지게 됩니다. 남성형 탈모에서 M자형이나 O자형 패턴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마와 정수리 부위의 모낭이 DHT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옆머리와 뒷머리는 DHT에 덜 민감해서 비교적 오래 남아 있습니다.
유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저는 어머니 쪽 외가에 탈모가 많다는 걸 뒤늦게 알았는데, 탈모는 남자끼리만 유전되는 게 아니라 양쪽 부모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습니다. 아버지가 탈모가 심해도 어머니 쪽 유전자가 좋으면 자녀는 괜찮을 수 있고, 반대로 아버지는 괜찮은데 어머니 쪽 유전이 탈모 경향이 강하면 아들이 심한 탈모를 겪기도 합니다. 실제로 20대 여성 탈모 환자 중 상당수가 아버지에게 탈모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형 탈모는 앞머리 라인은 유지되면서 정수리 부분이 점차 가늘어지는 패턴을 보이는데, 특히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남성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 탈모가 가속화됩니다.
약물 부작용과 원형탈모: 치료법과 오해
탈모 치료의 기본은 약물입니다. 남성형 탈모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약물은 피나스테리드인데, 이 약은 5알파 환원효소를 억제해서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전환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 결과 모낭이 점차 정상화되고 생장기가 길어지면서 발모 효과가 나타납니다. 또 다른 치료제인 미녹시딜은 두피 혈관을 확장시켜 모발에 영양분 공급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피나스테리드를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부작용에 대한 것입니다. 성기능 저하나 기형아 출산 우려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남성이 많은데, 실제로 남성이 복용할 경우 성기능 문제나 기형아 출산 위험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가임기 여성이 복용했을 때입니다. 임신 중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면 남성 태아의 성기 발달에 이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금기입니다. 저는 피부과에서 이 약을 처방받을 때 의사가 이 점을 매우 강조했던 게 기억납니다.
원형탈모는 남성형 탈모와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발생합니다.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데, 면역 세포인 림프구가 자신의 모낭을 이물질로 착각해서 공격하면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겁니다. 원형탈모반이 한두 개 생기는 경우부터 머리카락 전체가 빠지는 전두 탈모, 심하면 온몸의 털이 빠지는 전신 탈모까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급성기 원형탈모의 경우 30대에 갑자기 발생했다가 90% 이상에서 치료 없이도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전두 탈모 같은 중증은 재발률이 높아서 난치성으로 분류됩니다.
원형탈모 치료는 스테로이드를 두피에 바르거나 주사하는 방법, 또는 알레르기 접촉 피부염을 일으키는 약물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면역 치료가 사용됩니다. 저는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를 한 번 겪었는데, 동전 크기만큼 머리카락이 빠졌다가 석 달 만에 다시 자라났습니다. 그때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국소 도포 치료를 받았고, 스트레스 관리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생활습관 관리: 두피 건강보다 중요한 것들
탈모를 유전의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후천적 탈모는 생활습관과 영양 상태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제가 피부과에서 진단받은 건 스트레스성 탈모와 영양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때 제 생활을 돌아보니 수면이 하루 5시간대였고, 끼니를 자주 거르고, 업무 강도는 번아웃 직전이었습니다. 철분 부족, 단백질 부족, 비타민D 부족이 모두 탈모를 유발할 수 있고, 급격한 다이어트로 체중이 짧은 기간에 많이 빠지면 탈모가 생기는 경우도 흔합니다.
수면을 7시간 이상으로 늘리고, 단백질과 아연을 의식적으로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닭가슴살, 계란, 견과류를 매일 먹었고, 종합 비타민도 꾸준히 복용했습니다. 업무 강도를 줄이는 데도 신경 썼습니다. 석 달 정도 지나자 배수구에 쌓이는 머리카락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탈모는 초기에 잡는 게 훨씬 쉽다는 걸 몸소 체감했습니다.
흔히 두피 마사지나 혈액순환이 탈모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두피 혈관은 충분히 발달해 있어서 혈액순환 자체가 탈모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두피를 빗으로 두드리거나 마사지한다고 탈모가 개선되지 않습니다. 파마나 염색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마를 너무 강하게 하거나 규정 시간보다 오래 하면 머리카락이 약해져서 부러질 수는 있지만, 이건 탈모가 아니라 모발 손상입니다. 한두 달 지나면 부러진 부분이 다시 자라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어성초 샴푸나 민간요법에 대한 광고를 많이 보는데, 검증된 임상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 한 명이 좋아졌다는 사례가 있어도 그게 샴푸 덕분인지 자연 회복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원형탈모의 경우 자연 회복률이 높기 때문에 민간요법을 쓴 시기와 회복 시기가 우연히 겹치면 효과가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근거가 명확한 치료법을 쓰는 게 시간과 돈을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모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첫 단계입니다.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하면 미루지 말고 피부과에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남성형 탈모라면 약물 치료를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고, 원형탈모라면 스트레스 관리와 면역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생활습관 개선은 모든 유형의 탈모에 도움이 됩니다. 수면, 영양, 스트레스 관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가장 강력한 예방책입니다.